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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헤이즈

제 5화 내가 독일에 있게된 이유

Hayes Kim 2023. 11. 12. 04:21

Oldenburg (Hayes, 2023)

2023년 11월 10일 현재 시각 2시 14분
오늘의 나는 독일 북부 Oldenburg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고 Lappen이라는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308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이다. 예전 룸메이트인 터키계 독일인 친구가 알려준 터키식 불구어샐러드를 해먹기 위해서 터키마트를 들렀다 가는 길이다. 바질, 파슬리, 고추 등등을 샀는데 10유로 넘어야 카드로 계산이 된다기에 반강제로 귤 한상자를 들고 가는 길이다. 무겁다. 

귤들 (Hayes, 2023)


어쩌다 나는 지금 귤 상자를 들고 독일 버스장에 앉아 있는가. 그 시작은 무엇이였는가. 아마 나의 엄청난 역마살 그리고 비정상회담 덕분일 것이다. 고등학교때 비정상회담을 엄청 재미있게 봤다. (사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더 재미있게 봤다 + 고3은 뭘 봐도 재밌다 + 수능 끝나고 모든 흥미를 잃었다.) 비정상회담에 고정으로 출연했던 다니엘 린데만이라는 유명한 독일인이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독일에 매력을 느꼈고 그 뒤로는 독일이 좋은 나라인지 내가 독일을 좋아해서 좋아보이는 건지 좋은 것만 보면 다 독일이였다. 독일 문화, 법, 철학, 디자인, 미술 등등. 그 뒤로 나는 "독일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난 "되고 싶다 - 될까 - 될거야!- 되게 하다"의 발전과정을 겪는 편이 아니다. 다음 겨울이 내년에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것 처럼 나의 독일도 나는 그렇게 당연하듯 생각했다. 나는 늘 그렇듯 입방정을 여기저기 떨고 다녔다. 그렇게 난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한 사람이 되었다.

독일어 알파벳도 모르면서 그 놈의 입방정의 시간으로만 거의 5년을 채웠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놀아야 되고 술도 마셔야되고 과제는 안해도되고 여행도 해야하고 알바도 해야했다. 난 케리비안베이에서 꽤 오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중국 유학을 준비하는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알바 쉬는 날에 유학원을 알아보면서 언니의 유학을 점점 현실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유학원이라는 기관의 존재와 유학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묶혀놨던 나의 독일유학에 대한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샘이솟아리오베이비.. 그 날 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정보들을 모아서 간추린 다음 내 계획을 만들었다. 난 내 계획을 스케치북에 그린 다음 엄마아빠를 소집하고 발표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웃음과 함께 그들은 "응~ 해^^ 다 해" 라고 말했다. 동시에 내 닭똥같은 눈물이 아직 흐르지는 않고 내 눈알에 습기가 가득 채워졌다. 흡.. 너무해.. 난 이렇게 진지하다고.. 그리곤 울었다. 사실 눈물의 어떤 큰 의미는 없었다. 난 원래 아무때나 잘 운다. 그리고 어차피 허락을 구하려던 것도 아니였다. 아무튼 이 모든 상황 끝에 내 생각은 정확히 이랬다. "근데 난 말했다?"

그리고 독일어 문법책을 샀다. 그 책은 장식용으로 2년은 내 자취방들과 함께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열정이 과도하며 알파벳만 보면 눈을 감는 병같은게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독일어 수업도 열심히 신청했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으면 기특한 결말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열심히 신청만 했다. 놀거 다 놀고 할거 다 해보고 드디어 열심히 하는 신청을 넘어서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때가 나에게도 오긴 왔다. 하지만 독일에 간다고 말하고 준비는 개나 고양이를 줘버린 이런 나의 창의적인 행위들로 인해 당시에 나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에 갈거지만 한국에서 놀고 있는 양치기 소녀였다. 확신에 차서 너 같은 애들 수도 없이 많이 봤는데 가는 애 한 명도 없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말하는 "수도 없는 애들" 중에 한 명이 되어버렸다. 아쉬워서 어쩌나! 나는 무슨 독일 귀신에 홀렸던 건지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고 돈을 모으고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날랐다. 가서 부딪히자! 열심히 하자! 등 이런 긍정 가득한 자기 주문도 없었다. 그냥 홀렸다. 그래서 지금도 넌 왜 하필 많은 나라 중에 독일이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는데 (다니엘 린데만을 제외하곤) 그 질문엔 여전히 나의 답은 없다. 친구들이 너가 그렇게 그냥 갈거라고 하고 다니길래 "쟤 또 저러네" 했는데 어떻게 진짜 갔냐라는 질문에는 "몰라. 그냥 미쳤었나봐" 한다. 독일이 뭐가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도 명확한 답변을 못한다. 나도 정말 알고 싶다. 현재 알아가는 중이고? 

그렇게 내 유학길은 큰 결심이나 결단없이 매우 자연스럽고 전혀 힘들지 않게 시작되었다. 뭐가 나를 홀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구세요 절 조종하시는 분..?

귀여운 말 in Oldenburg (Haye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