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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헤이즈/성장

[우당탕탕 독일 박사과정 준비 3] 망할 비자

Hayes Kim 2024. 11. 6. 07:44

나는 학생이자 Werkstudent 였다. 박사과정을 준비 중에 있었으나 졸업을 곧 앞둔 탓에 (이미 발표까지 마쳤으나 의도적으로 하나의 졸업 조건을 채우지 않은 상태였음) 비자 변경이라는 급한 불을 꺼야했기에 더 안전한 길로 파트타임 취업을 택했다. 일자리도 필요하고 박사과정 입학도 필요했고 둘 다 동시에 할 수가 없어서 가장 안전한 길 먼저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졸업날짜를 2월로 미뤄 학생비자를 확보하려고 하였으나 계산 착오로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패스하고 어쨋든 다음달 부터 한달간 한국행 휴가가 예정되어있고 이미 모든 것이 예약되어 있으며 갔다 와서 한 달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었다. 젠장 내가 오늘 졸업날짜를 받아버려서 내일부터 근로학생으로 일할 수가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당일 듣게 되었다. 셰프도 어떻게든 해결해주고자 노력하였으나 하루아침에 일도 별로 없는 회사에 동정심에 갑자기 채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나는 오전에 학교에서 이메일을 받고 오후에 회사에 열쇠를 반납하고 나오는 전혀 웃기지도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심지어 이틀 뒤 시작하려고 했던 다른 파트타임 잡은 나의 비자가 졸업함과 동시에 효력을 잃어 불투명해졌다. 이 모든 일은 몇 시간안에 모조리 겪었고 회사 구석 방에 처박혀 울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다들 하하호호 웃고 떠드니 더 고립된 느낌도 들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셰프가 초콜릿을 먹는데 그냥 그것도 미웠다. 진정으로 날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하루아침에 날 자른 것 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오해받지 않으려고 급급한 모습만 보여서 난 마음도 좀 상해버렸다. 더 이상 생각할 기력도 없었고 그냥 모든 것을 다 20분만에 정리하고 혼자 집에 터벅터벅 걸어왔다.

집에 들어오니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눈물은 이제 좀 흘렸겠다 난 이제 어찌해야하나. 생각 정리가 쉽지 않다. 한국행을 앞당겨 돌아갈까. 좀 만 더 버텨보다 갈까. 버티는 동안 뭘 해야 할까. 연구계획서 수정이 먼저일까 일자리 구하기가 먼저 일까? 일자리 지원을 한들 12월에 예정된 한국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무비자 입국이 아닌가? 그나저나 버틸 수 있을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언제까지 어떤 좋은 수를 생각해야 할까?

모든 경우의 수가 무너진 기분이다. 도미노를 아슬아슬 쌓다가 작은 실수에 모두 넘어간 것만 같이 스스로에 죄책감이 든다. 내가 또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얼렁뚱땅 박사일기의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글로 쓰면 생각이 정리 될까 하여 펜이 아닌 폰을 들었다. 난 지금 꽤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매우 복잡한 졸업과 취업과 비자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과 나의 실수연발 선택들로 굉장히 심란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학생신분으로 학생비자를 받았고 학생신분으로 일하던 자리는 하루아침에 모두 무효화되었다.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다. 1년 반을 학생으로 일한 나는 끝내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했고 회사도 감정적으로 사람을 뽑을 순 없으니 그 쪽의.입장도 이해하지만 서운하고 복잡한 마음은 나도 조절할 수가 없다. 다음주에 한번 들러서 샴페인을 마시며 작별파티를 하자는데 내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이런 마음으로 샴페인을 따며 웃을 수가 없다. 차라리 소주 한 잔하며 허탈하게 웃고 싶을 뿐이다. 내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다.

외국인의 삶에 지쳐가고 있을 무렵 차라리 아예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잘 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하늘도 신도 운명도 믿지 않지만 차라리 열심히 올라가던 계단에서 내려와 다른 계단으로 올라가보는 것도 길게 보면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인생의 정답은 없고 "낫다"는 것도 정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선택이든 좋고 나쁜 선택은 없겠지만 내가 걷는 길이 자꾸 내 발걸음을 막고 한 걸음이 힘들다면 다른 길로 걸어보고 그 길을 "더 나은"길이라고 생각하던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정신과 신체적 건강에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현재의 내 생각이다. 

비자라는 것이 짜증나는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독일에 온 목적이 언제나 확실히 있었고 운이 좋았던 것인지 비자 문제를 겪을 일이 없었다. 이번 달은 이상하게도 면접에서도 비자를 물어보고 비자 때문에 그 일을 못하게 되고 비자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비자 때문에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비자 때문에 결국 한국행을 고민하게 되었다. 비자가 없고 소속도 없으니 참 외국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였지 하게 된다. 주변에 지인과 친구들은 모조리 독일인이라 비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고 그에 대한 공감도 못한다. 비자 얘기도 하기가 싫어졌다. 그 안쓰럽다는 눈빛도 싫고 도움을 주려는 손길도 버겁다. 비자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독일인은 외국인청의 담당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