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석사과정 마지막 발표를 마쳤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진짜 끝났다니. 우리 과의 경우에는 논문 제출을 먼저 하고 한 한달정도 전후로 발표를 하게 된다. 다 쓴 논문을 피곤하디 피곤한 얼굴로 usb에 담아 인쇄소 겸 카페에 가서 인쇄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한 일주일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갔는데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벌써 다 되었다며 내 최종 논문을 건네주었다. 그때는 사실 후련함보다는 실수한 것은 없나 걱정되는 마음이 조금 더 컸다. 그리고 학교에 제출하러 갔을 때 총 세 부를 건네주었더니 직원분이 도장을 쾅쾅쾅 찍고 수고했다며 이제 너의 시간을 즐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오는데 드디어 후련함이 느껴졌다.
마지막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힘들고 긴장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도교수님과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에 논문을 제출했기 때문에 되돌릴 것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최선를 다 했고 사실 내가 이제 뭘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잘 정리해서 발표를 매끄럽게 했다. 내가 가장 주의했던 부분은 바로 시간이였다. 내 언어로 말을 하는게 아니여서 같은 말을 해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려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를 준비할 때 시간을 체크했다.
난 원래 발표할 때 긴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열 받고 피곤한 날은 발표를 더 잘하는 경향이 있는 이상한 사람이다. 석사논문 최종 발표날도 그닥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독일에서 수업과정안에서 뭔가 발표할 때면 미친듯이 떨었는데 그것은 언어문제로 오는 긴장이였다. 그동안의 시간과 그 시간안에 노력한 과거의 내가 언어문제를 차츰 해결해나가며 어느정도 편해졌고 내 주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발표하기 더 편했다. 심지어 지도교수님들이 내 앞에서 심사를 하고 있을지 언정 늘 보던 분들이고 다정하지 않으셨던 적이 없던 분이여서 여느 날 처럼 이야기하는 느낌도 났다. 그러나 내가 크게 긴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성향도 사람도 아니였다. 난 심사 후 곧바로 통과 여부와 점수를 알려주는지 몰랐다. 발표 직후에 유난히 질문을 많이 하시길래 아니 어차피 곧 연구계획서 수정건으로 다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있고 이 석사논문은 이미 다 끝났는데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시지 했다. 정성껏 대답하고 있다가 문득 심사중임을 깨닫고 더 정성스레 문장을 꾸며갔다.
질의응답 시간도 끝이 나고는 갑자기 나에게 잠깐 나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다시 부르겠다는 말도 못들어서 짐 싸고 나갈 뻔 했는데 놓고 가도 된다고 하시길래 아.. 빨리 가고 싶은데.. 생각하며 쭈뼛 쭈뼛 짐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친구가 점수 바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본인도 학사 때 이렇게 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부랴부랴 긴장되는 찰나에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하셨다. 지도교수님들이 어쩐지 뭔가 나에게 줄 것이 있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꼭 크리스마스 아침에 세수도 안하고 설렘 가득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아이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는 부모님처럼.. 들어가자 마자 점수가 쓰여있는 종이를 보여주셨고 난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선물을 받은 기분이였다. 입을 틀어막고 상황파악을 했다.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고 장을 보러 가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까지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 진짜 끝났다니 라는 시원섭섭함과 생각보다 더 잘 마무리하게 되어 어안이 벙벙한 감정이 뒤섞였다. 뭔가 감정적으로 붕 떠 있을 때 나는 걷는다. 그 날 저녁에도 걸었다. 나윤권의 "바람이 좋은 날"을 들으면서 걷는데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 노래가 좋았던 것인지 어쨋든 노을이 너무 예뻤다. 늘 다니던 집 앞인데 너무 예뻤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내가 독일에 와서 이루고자 했던 석사졸업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졌다. 그것을 이루는 동안에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것도 여러 생기고 그래서 독일에서 남은 다른 목표와 꿈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시원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졸리다.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