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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 서은국 / part 2 본문

# Book Report

[독후감]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 서은국 / part 2

Hayes Kim 2024. 11. 9. 02:00

2024.09.25 - [# Book Report] - [독후감]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 서은국 / part 1

 

[독후감]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 서은국 / part 1

나는 행복감을 느끼면 눈을 감고 느낀다. 습관이다. 어차피 내일이 오면 사라질 기분이고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린다. 독일에 유학온다고 마냥 설렜지만 와서 내내 울었고 학교에 합격하고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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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서인국, 2021)"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Lykken & Tellegen, 1996; 서인국, 2021)"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 라는 질문으로 이 장을 시작했다, ...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대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행복이 무엇인가?

인간은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유없이 태어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생존을 위해 행복감이 사용되는 것 뿐이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도 인간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유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 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드려야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우주의 기원은 아무런 목적이 없고 인간의 탄생도 문명의 발달도 궁극적 목적이 없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서인국, 2021) 그러니까 인간은 목적없이 태어나 생존을 위해 설계된 신체와 감각들로 살아간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고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와 학문들이 만들어 졌고 인간들은 각자 나름의 삶의 의미를 만들며 살아간다. 자신들의 세상에 규칙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상상의 사후세계까지 만들어 냈다. 행복감은 사실 생존에 유리한 설계의 도구로 사용되어지지만 (즉, 행복은 궁극적 생존의 도구) 대부분의 인간들은 행복감을 생존의 이유로 설정한 것만 같다 (즉, 생존은 궁극적 행복의 도구). 

자. 그럼 행복감은 생존이라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행복감은 생존에 필요한 것일까? 이 책에서 이 이유에 대해 인간은 행복감 (쾌감) 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다.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것이 쾌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 (Nesse & Ellsworth, 2009; 서인국, 2021)" 즉, 행복과 행복을 쫒음은 생존을 위한 도구 였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감을 준다면 이 행복감은 결국 생존과 번식에 연결되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오늘 날 돈을 잘 벌고자 하는 욕망은 행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번식경쟁에 있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능력이며 부인과 자손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 인간의 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에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기억에 남았던 책의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오늘 날의 인간이 승진이나 성취의 기쁨에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데 이것은 승진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돈이나 지위와 같은 삶의 외형보다 축하와 인정이라는 삶의 즐거움과 같은 무형적 의미가 행복력의 원동력이며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 이제 삶의 외형으로 자랑"질"을 하며 본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좋아서 이야기 것이 아니라는 말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이 없으면 당신은 당신의 승진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예를 들면 재력은 당신의 가족을 지켜줄 수 있어 행복감을 주도록 설정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신의 재력 "자랑"은 남들의 축하와 인정이 없다면 당신도 얻는 것이 없다.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들만 잃을 뿐이다. 즉, 삶의 외형보다 무형적인 의미가 행복감을 더 자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는 결국 행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이 책을 펼쳤을 독자들을 위해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도 있다. 바로 "인간"이다. 다른 인간과 만드는 사회적 경험이 행복감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적 경험도 결국 생존을 위한 것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지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의 행복 전구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훨씬 자주 켜진다고 한다.  영원히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혼자 충전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에너지를 비축한 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과의 만남이 싫고 귀찮다는 사람들은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아니라는 것이니 영원히 싫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독립심이 높고 외로움을 잘 안탄다고 사람과의 만남이 자신의 행복요소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영원히 혼자 고립된다면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이 된 다음엔 서서히 행복전구는 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유전적 특성" 이며 행복감과 더 관련이 깊은 것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라고 한다. 외형적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이 사람들과 더 쉽게 어울리며 긍정성을 타고 난 사람이 이미 가진 것에 대해 더욱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행복감을 치열하게 쫒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심리적 편안함을 줄 수도 있겠다. 당신이 부단히 노력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직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당신의 부족이나 잘못이 결코 아니고 당신이 그토록 쫒았던 것은 애당초 행복스위치를 자주 누를 수 없는 것이 였을 뿐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돈을 아무리 모으고 몇 단계의 승진을 거듭해도 행복이 계속 채워지지 않는 것은 돈이 모자라거나 더 높은 직무를 맡아야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행복 스위치를 자주 누를 수 없는 것들이였기 때문이다. 한달에 한번 오는 월급날과 몇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승진의 기회는 행복스위치를 자주 누를수가 없다. 승진으로만 행복감을 느끼고 승진은 2년에 한번만 한다면 2년에 한번만 행복할 것인가? 1억을 모아야 행복하다면 평생에 단 한번, 1억이 통장에 찍혔을 때만 행복할 것인가?

사실 통장에 쌓이는 돈보다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스위치가 더 자주 눌릴 수도 있다. 내가 밤산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밤산책을 나갈 때마다 행복할 것이다. 내가 무엇에 행복감을 느끼는지를 알고 그것을 내 일상에 세팅한다면 내가 원할 때 마다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행복지뢰를 많이 설치하라고 한다. 그리고 행복은 세상에게 내가 얼마나 잘났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며 누구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데에 어떠한 이유도 없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초록색이 예쁜 이유를 설명할 필요 조차 없다. 내가 몇살에 어떤 차를 타던 어떤 아파트에 살던 본인의 현실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행복감을 자주 누를 수 있는 환경설정인 것이다. 매일 차를 타며 편안하고 매일 집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면 매일 행복하기 쉬울 것이고 특정 브랜드의 차를 가져야, 몇 평의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면 평생의 단 두번 행복할 수도 있다. 심지어 물질이 가져다주는 행복스위치는 쉽게 꺼진다. 권위와 명성을 차와 아파트라는 물질 소유로 채우려 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안타까운 회로를 가진 것이다. 권위와 명성은 타인없이 존재할 수 없다. 타인의 인정만이 본인의 행복감을 채워줄 수 있는 회로는 본인의 행복이 본인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찾는 것을 행복탐지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행복스위치로 비유하며 이 탐지기의 행복신호는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자원을 취할 때만 선별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한다. 꾸준히 안행복한 상태나 꾸준히 행복한 상태는 고장난 탐지기이며 안행복한 상태가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활동을 선별해 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행복하려면 행복하지 않을 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분노와 슬픔과 같은 행복과 거리가 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도 없다는 역설적 사실이다.  

 

"행복의 기원"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서인국 교수님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언급하며 마지막에 "특히 행복은 '비움', '감사', '느림'이라는 공허한 지침들에 지친 이들과" 라고 썼다. 극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진부한 지침들과는 달리 어떤 방법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이 책도 행복의 기원과 속성을 이야기 하며 행복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지침을 전달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더 행복하다, 이미 가진 것에 더 만족하자, 사람들과 교류하자, 삶의 외형보다 무형적 의미에 집중하자, 사소한 행복감을 느끼자며 개인의 성향적 기질을 바꾸라던가 의식적인 생각을 고치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고방식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불가능한 지침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이미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시간적,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놓는 것을 통해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일상을 세팅하라는 현실적이고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제안을 한다. 이 책은 다른 행복지침서와 구별되는 "행복설명서"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행복을 찾으려 이 책을 펼쳤지만 나에게 이 책이 준 의미는 행복의 기원을 앎으로써 행복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쫒음에서 해방되는 것"이였다. 행복이 무엇인지 그려지기 시작했고 쫒아도 잡을 수 없던 원인이 무엇이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행복의 적나라한 사실이 본질을 깨닫게 하고 결론은 생존이라는 이 진실이 오히려 허구의 행복을 쫒지 않게 하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행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는 알쏭달쏭한 굴레 밖으로 탈출하게 할 수 있게 했다.

나는 기쁨도 슬픔도 화남도 잘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긍정성과 외향성도 운 좋게 가지고 태어났으니 나는 내 행복탐지기에 꽤 만족한다. 내 행복탐지기가 더 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내 주변환경에 행복지뢰를 더 많이 깔아 놓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