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간은 누군가로 인해 설계된다. 오늘 우리가 아는 파리나 런던 그리고 서울의 모습도 생길 때부터 그렇게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지리적 상황을 기반으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구조였다. 그래서 '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닌 것이다. 당시 도시설계에는 당시에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가 담겨 있다. 그 말은 반대로 오늘날에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아닌 가치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농업시대엔 농업에 관련된 인프라나 토지 제도가 발달했을 것이고 마을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농업을 위한 설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산업시대가 들어서고 노동력이 도시에 몰렸고 이제 도시는 노동력과 생산성을 위한 인프라와 위생에 관한 설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예시이고 이뿐만 아니라 이런 역사적 회귀에서 정치적 상황과 문화적 상황, 지리적 요소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오늘날 젠더문제같은 '가치'에 대한 접근이나 환경문제와 같은 '자연'에 대한 접근은 상업시대의 도시설계에서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것이고 빠른 대량 공급 중심의 개발 방식으로 무지개떡 건축물들로 만들어진 서울이 과거로 돌아가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오늘 서울의 얼굴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상상해 보는 접근법이 바로 'Pastcasting'이다.
유사하지만 다른 접근을 가진 방법론들과 함께 비교해 보면 이해가 더 쉽다:
Forecasting: 현재에서 미래를 예측
Backcasting: 미래에서 시작, 현재를 계획
Pastcasting: 과거에서 현재(미래)를 상상
Forecasting은 현재의 상태나 상황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현재를 고정시켜 목표되는 시기의 미래의 모양을 예측해 보는 것이다. 일기예보(Weather Forecast)가 현재에서 미래를 보겠다는 접근 중 한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다.
Backcasting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방법론이다. 2025년도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개발 모델들이 여기에 속한다. 미래의 상태나 상황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미래가 올 때까지 현재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2026년까지 5kg를 어떻게 빼겠다고 계획을 하는 것도 Backcasting이다.
Pastcasting은 과거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에 어떤 요소가 바뀌었다면 오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투영해 보는 것이다. 탄소중립정책이 19세기 초에 실행되었다면 오늘 도시들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Pastcasting은 이렇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구조와 틀을 과거의 선택의 결과로 본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유 없이 믿어오던 일종의 패러다임을 깨어 볼 수 있는 것이다. Pastcasting의 중요한 기능을 총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1. 깨진 패러다임, 현재의 재조립
과거의 총체적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오늘이라면, 오늘의 총체적 상황에서도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시 세대와 오늘의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고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도 다르다. 그래서 왜 우리 도시가 지금 이런 모습을 갖고 있는지 역추적해보면 어떤 가치가 우선시 되었는지 알 수 이 있고 오늘날의 가치관과 부딪힌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제도적인 문제도, 공간적인 설계도 당시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이므로 현재의 우리가 지금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조립할 수 있다. Backcasting도 미래의 목표를 고정하고 그에 따라 현재를 수정하겠다는 접근인데, Pastcasting은 역방향으로 추적해 현재를 수정하겠다는 접근이다.
2. 지워진 불평등 상기
당시의 사회적 상황, 특히 정치적 상황은 많은 불평등을 지웠다. 불평등 해결이라는 가치가 당시엔 중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불평등이 발생했을지 언정 기울어진 권력에 어떠한 문서조차 남겨져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로 굳어져온 관습이나 어떠한 사회적 구조가 지금의 세대로 그대로 이어져왔을 수도 있다. Pastcasting은 바로 이 지점을 다시 파헤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역사 속에 가려졌던 불평등을 상기시켜 현재를 수정할 수 있다.
3. 오늘의 모습은 과거 '선택'의 결과
Pastcasting은 과거에서 현재를 역추적하며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된 구조와 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과거에 어떤 이익을 위해, 어떤 권력집단들이 모여 짜놓은 구조와 틀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다. 오늘날의 세대들에겐 많은 우선순위가 달라졌고 정치, 사회, 문화적 뿐만 아니라 환경적 상황도 달라졌다. 따라서 오늘의 상황 속에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바로 이 Pastcasting 접근법으로 알 수 있다.
결국 Backcasting과 Pastcasting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수정하겠다는 목표는 같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힌트를 얻기 위해 살펴보려는 시간대의 화살표의 방향만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astcasting의 중요성은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과거를 알아야 오늘을 알 수 있다. 오늘은 과거를 거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지는 않는 듯하다. 아마 Pastcasting이라는 용어 사용되더라도 원어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과거회귀 방법론'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Pastcasting 접근법을 알게 된 것은 'pnd - rethinking planning' 이라는 도시공간 연구 플랫폼에서이다. 시간적 공간이라는 주제로 TU Wien의 Johannes Suitner 교수가 초빙되어 진행된 팟캐스트가 있었고 스크립트와 지난 팟캐스트를 올려주는 이 사이트에서 Pastcasting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Suitner 교수의 연구가 바로 이 접근법으로 비엔나 도시공간을 연구한다. 그의 연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pnd 사이트에서 이 주제가 올라온 포스팅 주소이다: https://www.pnd-what-next.de/
그리고 pnd 플랫폼에 대한 지난 포스팅이다:
2025.06.10 - [4. 공간 배움터] - 도시 공간 연구 플랫폼 "pnd - rethinking planning" (+ 독일어와 영어공부도 함께)
도시 공간 연구 플랫폼 "pnd - rethinking planning" (+ 독일어와 영어공부도 함께)
도시공간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여러 플랫폼들을 알아보다 흥미로운 사이트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pnd - rethinking plannung"이라는 사이트이
lavandul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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