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헤이즈/Episode

인생편 | 레드라인

Hayes Kim 2025. 6. 4.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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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더 이상 침범하면 참지 않는, 어떤 레드라인이 있는 것 같다. 비단 인간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그렇다. 그 레드라인은 '더 이상은 참지 않겠어, 더 이상은 받아주지 않겠어'라는 의미일 테지만, 속내는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와 같다. 힘들어서.

레드라인의 경계와 강도는 매우 주관적일 것이다. 가뜩이나 버티고 있는데 또 버티라고 하면, 낮아진 임계점에 그대로 터져 버리고 만다. 왜 힘든 일은 몰아서 올까? 액땜이나 행복 총량의 법칙, 긍정적 사고의 힘, 뭐 이런 거 나는 이제 믿지 않는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아침이 오기 전 새벽처럼 밝아지기 직전, 가장 어두울 때 힘들다고들 한다. 우리네 인생사 정답도 없고 정해진 대본도 없다. 고로 그냥 이런 일들이 우연히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과관계 없이 일어날 때가 제일 고역이다. 아무튼 밝은 날이 찾아오려 지금 우리가 힘든 게 아니다. 긍정적 사고를 안 해서 힘든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힘든 것이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레드라인이라는 선을 긋는 것이 참 어렵다. 정말 도저히 못 버티고 터져 버렸을 때는 이미 나를 보호하기에는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때는 조금 다쳤어도 발을 빼면 그만이다. 아직 터질랑 말랑하는데, 조금만 더 버텨 보면 될 것 같은데 더 이상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결단이 서지 않을 때 나를 보호하는 레드라인을 그어 버리는 그 순간, 그 결단이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것 같다. 아무리 장점과 단점을 100개씩 쓰며 비교해 보아도 잘 모르겠다. 당연하다. 미래를 우리는 알 수가 없으니까. 가볼 수도 없다.

'레드라인 긋기''도망가기'는 혼동하기 쉽다. 그런데 나는 '도망가기'가 '레드라인 긋기'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아예 동일한 것 같기도 하다. 더 다치기 전에 얼른 도망가야 한다. 발을 빼야 한다.

버텨서 얻는 가치보다 버텨서 내가 잃을 가치들이 더 크면 그것은 최대한 도망이 답이다. 나약한 것이 아니라 똑똑한 것이다. 용감무쌍하게 열정적으로 젊은이는 다 도전해보고 부딪혀보고 맨땅에 헤딩도 해야 한다는 말이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렸다.  하면 뭐든 되는 게 맞지만, 그게 '잘'되는 게 맞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다 걸고 도전하면 당연히 결과가 어찌 되었든 잘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저 학교, 저 나라, 저 직업, 돈 그 자체, 명예 그 자체 이면 뛰어들면 된다. 뭘 해도 온통 남는 것 뿐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통상적으로 여러 가치가 뒤섞여 있다.

무엇을 얻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가 아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그 정도, 한 번 툭 치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정도를 설정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나도 지금 내 인생에서 레드라인을 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힘들지만 더 힘들지 않을 길로 가야 하니까. 한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 가는 100년이란 시간은 참 짧다. 난 '한 번 태어나서 이렇게 뒈질 순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주로 힘들 때 한다. 박수칠 때(박수를 친다고 믿고 있을 때) 떠날 것인가, 해볼 거 다 해보고 탈탈 털려서 되돌아갈 것인가. 선택에 따른 대가들도 있을 것이다. 아쉬워할 것인지, 아니면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될 것인지. 아쉬워하지도 않고 상처투성이가 될 일도 없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요즘 넷플릭스에 방영하는 '미지의 서울'의 미지같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 알아서 해결 되었으면 하는데, 알아서 다들 선 좀 안넘어 왔으면 바랄 게 (별로) 없는데 왜 내가 선까지 그어야 하는지. 인간들도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고 상황들도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정도로만 꼬였으면 좋겠다. 난 어디까지 견디다 발을 빼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건데 결국 또 남탓만 하고 있다. 뭐 이미 잘못되면 일단 다 남탓으로 돌려서 잠시나마 내 정신건강 좀 챙겨야겠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자아를 성찰해도 된다. 하기만 한다면. 사실 우연히 나쁜 인간과 나쁜 상황이 꼬이면 본인의 잘못은 크게 없을 때가 많다. 과도하게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도 기필코 피해야 한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받고 살면서 이런 하루들로 단 하루라도 채워지는게 더 이상은 싫다. 이 정도면 버틸만큼 버텼고, 이대로 계속가면 아마 조그만 돌맹이 하나에도 확 넘어가 버릴 것이다. 마음에 멍이 언제까지 들어야 내가 다른 선택으로 마음을 돌릴지 모르겠다. 멍이 커지도록 두면 결국 탈이 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선택이 결국 더 큰 멍인 것이면? 그 선택이 더 나쁜 것이라 더 크게 아플거면? 아마 이런 생각들로 겁을 내고 주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큰 멍인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있을지도 모를 큰 멍을 피하려고 작은 멍들로 평생 물들거면 결국 더 큰 멍이, 심지어 깊은 큰 멍이 낫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혹여나 레드라인을 긋고 도망친 선택이 더 큰 멍을 진짜로 줬다면? 어차피 그때가서 알게 되었을 것이고 큰 멍 한대 후려맞고 후회 잠깐 하고, 또 다른 선택지를 찾아가면 된다. 뭐 별 수 있겠는가?

'레드라인 긋기'도, '도망가기'도 우리가 가진 선택지 중에 하나이고 무턱대고 버티는 것 보다 어쩌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내가 선택해서, 내 의도대로, 내가 정해서, 내가 원하는대로 결말 맺은 마무리도 꽤 멋지다. 버티지 않겠다는 선택, 덜 괴롭겠다는 선택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일단 그것만 따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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